정책 매거진 중심重深

나의 중견련

 

2002년 9월 첫 출근 하던 날이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생소했지만 150여 명의 자수성가한 중견기업인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큰 기대감으로 출근했다. 사무국 인원은 정직원 5명, 단기 아르바이트 3명, 총 8명으로 소규모였지만 주요 경제단체 경력이 있는 베테랑 직원들과 투지 넘치는 아르바이트 직원들 간에 호흡이 잘 맞아 보였고, 재정비를 위한 사무실 인테리어를 새롭게 단장하면서 ‘우리 한번 해보자’ 라는 다짐과 결의가 모아지고 있었다. 

3년 연속 재정 적자로 회장단에서 특별회비를 납부해야만 사무국이 운영되는 상황이었지만, 더이상 회장단에 부담을 드릴 수는 없었다. 회장님과 사무국은 조직을 정비하고, 회원 확충을 최우선 과제로 정하고 재정 자립을 해보자고 결의를 다졌다. 우선 매일경제신문에서 발간하는 기업 연감 책자를 구입해 업력과 매출액, 영업이익을 고려한 회원 영입 DB를 만들기 시작했다. 회원 영입 타깃을 정하고 TM, DM을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매년 하반기에는 회원 확대 캠페인을 전사적으로 전개해 성과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바로 이듬해부터 중견련은 회비 수입으로 재정 적자를 면할 수 있었다. 이때 시작한 회원 영입 DB 구축 사업은 10년 간 지속되면서 정부가 중견기업 범위를 정하는데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했고, 중견기업 공식 통계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던 중견기업에 대한 법적 지원 근거를 만드는 데 초대 회장인 유기정 삼화인쇄 회장님과 박승복 샘표 회장님, 윤봉수 남성 회장님 등 과거 중견련 회장님들의 의지와 노력이 컸다는 것을 잊을 수 없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때 물심양면으로 투자하고 열정적으로 기업인들에게 동참을 권유했던 헌신을 기억하고 있다. 정부, 국회를 상대로 중견기업 지원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해서 당시 자문위원장이었던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님과 한국질서경제학회 교수님들을 주축으로 정부 고위층 인사 초청 강연회, 세미나, 연구 용역 등을 추진했다. 그러한 노력들이 밑거름이 되어 강호갑 회장님의 젊은 리더십과 강한 추진력으로 모두의 예상을 깨고 ‘중견기업 특별법’이 2013년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보다 더 큰 연말 선물은 없었다고 기억한다. 올해 3월에는 최진식 회장님과 이호준 상근부회장님의 맹활약에 힘입어 ‘중견기업 특별법’이 상시법으로 전환되는 쾌거를 이뤄냈다. 20여 년 중견련에서 근무하면서 이런 역사를 함께 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자 감개무량한 일이다. 중견련 퇴직 후 삶을 준비하는데도 큰 자양분이 될 것이라 믿는다.

 

아내를 포함한 가족, 이전 직장 동료들 모두 생소한 단체에 취업하는 것을 우려했지만 중견련을 선택했다. 입사할 당시 대기업의 대안 세력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중견기업은 한국 경제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믿었다. 당시에는 누구도 귀 담아 듣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이젠 ‘중견기업이 답이다’라는 말씀을 한다. 지금까지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중견련 가족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견련은 나에게 많은 것을 줬다. 좋은 멘토, 좋은 선후배, 좋은 파트너들을 연결해 줬다. 우리나라의 살아있는 경제계 전설들을 가까운 곳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해 주고 있다. 이보다 더 큰 보상은 없다고 생각하고,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퇴직하는 그 날까지 선후배들과 함께 현장에서 배우고, 실행하고,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겠다. 오늘도 중견기업을 방문해 중견련 회원 혜택을 하나, 둘, 셋, 테이블 맞은편 회장님께 진솔하게 전하는 것이 큰 행복이다.

 

이런 행복을 주는 중견련! 20년 전 나의 선택은 옳았다. 아내와의 결혼 다음으로 잘한 선택이라고 믿고 있다.